태고보우원증국사, 태고종 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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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普愚: 1301년 10월 23일(음력 9월 21일)~1383년 1월 27일(음력 1382년 12월 24일))는 고려 말 고승으로 불교 개혁에 힘쓴 승려이다. 호는 태고(太古) · 보허(普虛)이며, 속성은 홍씨(洪氏)이고 시호는 원증(圓證)이다. 흔히 태고(太古) 또는 태고국사(太古國師)라 불린다.
고려말에 고려는 원나라에 재침략받고 이어 그 지배하에 들어가는 사회상 불안에 따른 불교단의 타락과 오랫동안 쌓여온 기복 불교(祈福 佛敎)의 폐단은 마침내 고려 사회에 배불의 싹을 마련하고 있었다. 한편 원나라의 쇠퇴는 공민왕에게 정치상 자주성을 되찾을 기회를 주어 복고 정치를 과감히 수행해 갔다.
사상과 활동
보우는 대각국사 의천이 치선이라고 갈파한 구산을 통합하고 구이지학(口耳之學)을 지양하고자 원융부(圓融府)를 건립하고 선사(禪師)의 품법으로 모든 불교를 총섭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보우는 일찍이 만법귀일(萬法歸一) · 무자(無字)와 같은 화두를 참선하여 크게 깨친 바가 있었지만, 충목왕 2년에 중국에 다시 건너가, 임제(臨濟)의 제17대 법손(法孫) 석옥(石屋)에게서 법을 받고 충목왕 4년에 귀국했다.
생애와 활동사항
13세에 출가하여 회암사(檜巖寺)광지(廣智)의 제자가 되었고, 가지산(迦智山)에서 수행하였다. 19세부터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를 참구하였고, 26세에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한 뒤, 선(禪) 수행에 몰두하였다.
1330년(충숙왕 17) 용문산 상원암(上院庵)에서 관음기도를 하고, 1333년(충숙왕 복위 2) 성서(城西) 감로암(甘露庵)에서 정진하였으며, 1337년 불각사(佛脚寺)에서 『원각경(圓覺經)』을 읽다가 모든 알음알이를 타파한 뒤, 송도(松都)의 전단원(栴檀園)에서 무자(無字) 화두를 참구하던 중, 1338년 1월 크게 깨달았다.
그 뒤 양근(楊根)의 초당에서 어버이를 봉양하며 1,700칙(則) 공안을 점검하였고, 1339년소요산 백운암(白雲庵)에서 「백운가」를 지었다. 1341년(충혜왕 복위 2)중흥사(重興寺)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太古庵)을 창건하여 5년 동안 머물 때 「태고암가」 1편을 지었다.
1346년(충목왕 2) 원나라 연경(燕京) 대관사(大觀寺)에 머물 때, 궁중에서 『반야경(般若經)』을 강설하였다. 1347년 7월 호주(湖州) 천호암(天湖庵)에서 석옥(石屋)에게 도를 인정받고, 「태고암가」의 발문과 가사(袈裟)를 받았다. 1348년 귀국하여 중흥사에 있다가, 미원(迷源)의 소설산(小雪山)에서 4년 동안 깨달음 뒤의 수행을 하였다. 이 때 「산중자락가(山中自樂歌)」를 지었다.
1352년(공민왕 1) 궁중에서 설법하였으며 경룡사(敬龍寺)에 있었는데, 홍건적의 난을 피해 소설산으로 옮겼다. 1356년 왕의 청으로 봉은사(奉恩寺)에서 설법하였고, 그 해 4월 왕사(王師)로 책봉되어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다. 1362년 왕은 그를 희양산 봉암사(鳳巖寺)에 있게 하였고, 1363년 가지산 보림사(寶林寺)로 옮기게 하였다.
그 때 왕에게 총애 받던 신돈(辛旽)을 경계하는 글을 올리고 전주 보광사(普光寺)에 가서 머물렀다. 1368년신돈의 참언(讒言)으로 속리산에 금고(禁錮)되었는데, 이듬해 3월 왕이 이를 뉘우치고 다시 소설산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1371년공민왕은 그를 국사로 봉한 뒤 영원사(營原寺)에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사양하였다. 1381년(우왕 7) 양산사(陽山寺)로 옮겼는데, 우왕은 다시 국사로 봉하였다.
1382년 소설산으로 돌아와서 12월 17일 입적하였다. 나이 82세, 법랍 69세였다.
학문세계와 사상
그는 왕도의 누적된 폐단, 정치의 부패, 불교계의 타락 등에 대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공민왕에게 서울을 한양으로 옮겨 인심을 일변하고 정교(政敎)의 혁신을 도모하기를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민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묻자, 거룩하고 인자한 마음이 모든 교화의 근본이자 다스림의 근원이니 빛을 돌이켜 마음을 비추어 보라고 하였고, 때의 폐단과 운수의 변화를 살피라고 하였다. 또한 선문구산(禪門九山)을 통합하여 종파의 이름을 ‘도존(道存)’으로 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는 혼수(混修), 찬영(粲英), 조이(祖異) 등이 있다. 『태고집(太古集)』에는 그의 사상과 경지를 알게 하는 법어와 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서로는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2권과 『태고유음(太古遺音)』 6책 등이 있다.